캠핑장에서 애들이 신나게 뛰어논 덕분에 돌아오는 차안에서 둘다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애들이 10시 전에 잠들었다. 얼마전 빌린 책을 볼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책상위에 오레오가 있다 봉투가 까진 상태로 2개가 있다.
누가.. 나를 시험하려는건가.. 여름이라 지금 먹지 않으면 눅눅해질것이다. ..그럼 안되지…눅눅한 오레오처럼 우울한건 없다.
살빼기로했는데..
날도더우니 시원한 우유랑 같이 먹음 좋겠다..
방금 양치했잖아 돼지야..
5분이 넘는 시간을 책 한페이지 읽지 못하고 혼자 오레오를 보며 먹어야할 이유와 먹지말아야할 이유를 찾으며 고민을 하다. 책을 덮고 일단 책상에서 벗어난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아직도 생각은 책상위엔 봉투 까진 오레오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렇게 유혹에 약해서야.. 뜬금없지만
어릴적 본 불경이 생각났다. 큰 스님과 작은 스님이 자신들의 여행을 가던중 강을 건너려는 젊은 아낙을 돕기 위해 큰 스님이 그 여인을 업어 강을 건넜다. 작은 스님은 큰 스님이 불가에 속한 몸으로 젊은 여인을 업어 강을 건넌게 마음에 걸려 한참뒤 큰 스님에게 그것이 정당 한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큰 스님이 나는 곤란에 처한 이를 도와 강을 건너 그곳에 두고 왔는데 넌 그 여인을 지금까지 안고 왔구나 라고 한 구절이 생각났다.
오레오 있는 책상을 떠나 침실로 왔것만 난 아직도 오레오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구나
오레오 2조각에 아주 가지가지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눅눅해질 오레오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아니다..
내가 소유할 것이 아닌 물건의 상태가 어떻든 그것을 내가 왜 신경을 쓴단 말인가..
음식을 방치해 눅눅해져 버리게 된다면 죄를 짓게 되는것이다. 누군가 죄를 짓게 되는것을 알면서 방조하는 것 또한 죄를 짓는것이아닌가. 그러나 다른이가 죄를 짓지않도록 하는것은 내 덕을 쌓는것이 되지않을까? 이왕 덕을 쌓는거라면 시원한 우유와 함께.
미쳤구나.. 참아라.. 넌 오늘 저녁 삼겹살, 목살, 콜라, 육포, 파인애플, 복숭아, 포도 를 먹었다. 네가 사람이냐??.. 그만하자.. 오레오가 보이지 않는 침대에서 책을 읽다 자자..
이런 마음으론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거 같다. 그냥 먹어치우고 책을 보면 더 집중해서 볼수 있지 않을까? 지금 오랜만에 귀한 시간을 이런 생각으로 날려 버릴건가 시간을 아끼자 먹고 집중해서 책을보자..
젠장.. 오레오 2개에 40먹은 아저씨가 뭐하고있는거야.. 이게 지금 이러고 있을 일이냐?
분하다.. 허탈하고 씁쓸하다..
나에 어리석음에 화가 날뿐아니라 그후 합리적인 판단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내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먼저 이러한 일이 벌어진 이 상황이 너무 절묘했다.
난 오레오 봉투가 까져있지 않았더라면 절대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거다. 언제든 먹을수 있으니 걍 뒀다 나중에 먹었겠지...그런데 하필 까져있었다 게다가 여름!!
눅눅해지는건 자명한 일 그후 여러 고민 끝에 냉장고에서 시원한 우유를 꺼내 함께 먹기로 결심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먹기로 결정을 했다면 그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시원한 우유와 함께하는건 어떻게 보면 현명하지 않는가?
근데 화가 나는건 난 이미 오레오가 눅눅해져있을 경우를 생각하지 못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조금만 냉정하고 조급해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예상가능했다.
오늘 우리 가족은 캠핑장을 다녀왔다 애들은 캠핑장에서 재워와서 침대에 눕혔고 집에와서 아무도 과자를 먹거나 하지 않았으니 저 오레오는 아무리 빨라도 캠핑가기 전 오후2시 이전에 아내가 깠을것이다. 아들이 깠다면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태풍 후 눅눅한 여름에 최소 8시간 이상을 까진 상태로 있었을 거란 말이다. 이런 예상을 눈앞에 오레오 2개에 혹해 판단하지 못한 나한테 화가 났다.
입에 넣는 순간 눅눅에게 베어물린 오레오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 선택에 기로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았기에 분노하고 씁쓸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미 베어문 눅눅한 오레오는 매몰비용이다 sunken cost다 여기서 손절해야한다.
베어물고 남은 오레오와 멀쩡히 남은 오레오 한개는 버리고 우유로 입가심하고 양치하고 자는게 내입장에선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다.
이게 합리적이다는 걸 알았지만 동시에 난 알고 있었다. 결국 다 먹을 거란걸 여기서 멈출 수가 없을 거란걸 합리적 판단을 따르지 못하고 이미 눅눅하고 맛 없다는걸 알면서도 나머지 한조각 까지 다 먹을거란걸..
난 왜 이리 나약한 것인가. 다른 사람도 이럴까
눈앞에 오레오 2개에 혹해 이미 눅눅해졌을거라는 뻔한 예측도 못하고 그후 합리적인 판단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행으로 못 옮기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가.
오레오 2개로 나의 미래를 결정 지은듯한 이 씁쓸한 기분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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